어머니의 처녀시절 취미는 사진이었다. 그 때 당시론 상당히 비싼 기계였던 카메라를 할아버지에게 받아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어머니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분은 예전에 사진관을 하셨었고 어머니의 사진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하셨었다. 나야 보는 눈이 없으니까 모르지만.
그랬던 어머니는 결혼을 하시고 아들을 둘 낳으셨다. 나와 동생이 어린이일 때는 엄마 손을 잡고 여기저기 놀러다니면서 찍은 사진이 정말 많다. 동생은 순해서 엄마가 사진을 찍는지 어떤지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나는 왜인지 사진 찍는게 정말로 싫었다. 그래서 내 어린시절 사진은 죄다 찡그린 표정 아니면 눈을 감은 사진 뿐이다. 그리고 난 아직도 사진 찍히는게 익숙하지 않다.
나와 동생이 점점 커가면서 우리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서 어머니 자신만의 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덩달아 집안도 기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사진기를 장롱 속 깊숙한 곳에 넣어두시고 꺼내보지도 않으셨다. 그러다가 내가 인터넷 중고장터에서 오래 된 카메라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집 카메라는 대체 얼마짜리 일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 꺼내 보았다. 쓰지 않았던 카메라는 셔터가 닫힌채로 굳어버려서 사진도 찍히지 않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취미도 그렇게 닫힌채로 굳어버렸던 걸까.
어머니가 왜 그렇게 사진을 남기고 싶어 하셨는지는 사진을 하나도 찍지 않은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몇 년이 흐른 뒤 그 여행을 추억해보려고 했지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렴풋하게 남은 풍경들과 사람들의 모습 뿐. 그 때부터 사진을 찍어서 남기기 시작했다. 사진은 그 순간을 찍지만 나중에 들여다보면 앞 뒤로 기억이 재생된다. 마치 영상처럼. 순간을 찍는게 아니라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그 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조금이나마 즐기게 되었다.
오늘은 내 졸업식이었다. 한 동안 사진기에 손을 대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오랜만에 내 사진기를 받아 들고 즐거운 듯이 사진을 찍으셨다. 최신 디지털 카메라에 적응을 못하시는 어머니께 짜증을 냈다. 같은 포즈로 사진을 아홉장, 열장씩 찍는 어머니를 답답해 했다. 내가 고개만 돌려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어머니를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사진 찍히는게 익숙하지도 좋아하지도않는다. 그냥 나중에 보고 아 이런 일이 있었지 하는 정도로만 남기니까. 어머니의 마음은 한 장이라도 더 좋은 사진을 만들고 싶어서 였을텐데.
방금 전, 아까 찍은 사진들을 돌려봤더니 같은 사진을 제외하고 스무 장 정도 밖에 안된다고 아쉬워 하시는 어머니께 나는 한 장씩만 있어도 되는걸 뭐 그리 아쉬워 하시냐고 말하고 통화 종료를 눌렀다. 어머니는 한 장면이라도 더 남겨서 나중에 추억을 되살리는 매개체로 남기고 싶으셨던 걸까. 이 글을 쓰면서 조금이나마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조금 눈물이 났다.
이제 취업도 했고 어머니에게 좋은 카메라를 사드리고 싶다. 근데 내 카메라도 잘 다루지 못 해 쩔쩔매시는 어머니에게 DSLR을 사드려도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게 아닐까 하고 고민이 된다. 어머니에게 카메라는 직접 초점을 맞추고 노출을 재고 순간에 맞춰서 흔들리지 않게 셔터를 누르는 그런 기계였는데...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는 전혀 다른 물건인 것만 같다.
아들에게 뭔가를 항상 주려고만 하고 받으려고 하지는 않으시는 어머니께 부담되지 않는, 그리고 편하게 쓰실 수 있는 카메라가 뭘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다. 이젠 받은걸 조금씩이나마 돌려드릴 때가 되기도 했지.



